PASTORAL COLUMN
세 꾼들의 신앙이야기
드림교회
교회에는 늘 세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구경꾼과 말꾼과 일꾼입니다.
구경꾼은 멀찍이 섭니다. 그 밤의 베드로가 그러했습니다.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마 26:58). 멀찍이는 거리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입니다. 구경꾼의 자리는 안전합니다. 옷이 젖지 않고 손에 흙이 묻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은혜도 스며들지 않습니다. 그는 불 곁에 앉아 몸은 덥혔으나, 가슴은 끝내 차가웠습니다.
말꾼은 한 걸음 더 나아간 듯 보입니다. 입은 언제나 제단 앞에 먼저 가 있습니다.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마 21:30). 말은 헌신의 문턱까지 우리를 데려다 줍니다. 그러나 문턱을 넘겨 주지는 못합니다. 교회를 가장 깊이 아프게 하는 것은 대개 반대하는 손이 아니라, 약속만 남기고 돌아서는 입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의 권면이 서늘합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
일꾼은 다릅니다. 일꾼은 조용합니다. 주보에 이름이 오르지 않아도 새벽에 나와 성전 문을 엽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구석을 닦고, 아무도 세지 않는 의자를 정돈합니다. 주님은 바로 그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마 9:37). 주님의 탄식은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구경하는 사람도 많았고 말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다만 소매를 걷는 사람이 적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나는 지금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는가. 자리를 옮기는 일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구경꾼은 한 걸음만 가까이 다가서면 되고, 말꾼은 어제의 말을 오늘 하루 안에 손으로 옮기면 됩니다. 거창한 결단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헌신은 큰 결심에서 시작되지 않고, 작은 순종에서 자랍니다.
주님은 지금도 일꾼을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 앞에서 성도가 앉을 자리는 관람석이 아니라 밭입니다.
